영천의 명산 보현산 자락에서 해발 1,000m급 고봉들이 줄지어 이어진 장관을 감상하며, 포항시 죽장면 깊은 산속, 푸른 숲에 둘러싸인 선류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서각은 주로 마른나무를 재료로 하여, 그 표면에 정성스럽게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는 전통 예술입니다. 선류산장의 산장지기께서는 이 서각을 오랜 시간 다듬어온 듯,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과 솜씨가 느껴집니다. 산장 곳곳에는 그분이 직접 새긴 듯한 작품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걸려 있고, 그 정겨운 나뭇결 위에 담긴 글귀와 그림들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산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마치 외계인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형태의 목각 조각품입니다. 거칠게 다듬어진 나무결 사이로 튀어나온 눈과 길쭉한 얼굴, 익살스러운 표정이 어딘가 신비롭고도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살려 만든 이 조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깊은 산속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조용한 숲과 어우러져 더욱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산장의 첫인상에 유쾌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곳은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는 산장의 본채로, 나무로 지어진 따뜻한 공간 안에는 은은한 숲 내음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깊은 산속에서 직접 채취한 향긋한 산나물전이 차려지고, 그 곁에 시원한 오미자 막걸리 한 잔이 함께 놓입니다. 갓 부쳐낸 전의 고소한 향과 막걸리의 새콤달콤한 풍미가 어우러져, 긴 산행의 피로를 부드럽게 씻어줍니다. 창밖으로는 푸른 숲과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일렁이고, 그 자연 속에서의 한 끼는 소박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산과 산 사이, 고요한 품에 자리 잡은 이 산장은 넓진 않지만 아늑하고 정겨운 공간이었습니다. 자연 속에 조용히 안긴 듯한 이곳의 구석구석에는 손길이 닿은 정성이 느껴졌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산장 주변에 살포시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수줍게 얼굴을 내민 들꽃들이 반겨주었고, 꽃잎마다 햇살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조용히 숨어 있던 꽃들을 사진에 담으며, 자연이 선물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에 마음까지 따뜻해졌습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꽃임에도 불구하고, 선류산장 이곳저곳에서는 금낭화가 제 집인 듯 조용히 피어 있었습니다. 선홍빛과 연분홍빛이 어우러진 꽃잎은 마치 정성껏 수놓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래로 길게 늘어진 꽃의 모양은 금은보화를 가득 담은 주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금낭화라는 이름도, 그 모습에서 전해지는 풍요롭고 복스러운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작은 풀숲 아래, 햇살 스며드는 산장 담벼락 곁, 그리고 오솔길 가장자리… 금낭화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자연 속에 피어나 있었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자태는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마음까지 고요히 물들게 했습니다. 금낭화를 따라 산장을 거닐다 보면, 이 꽃이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자연이 선물한 작은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참을 걷다 눈에 들어온 꽃 하나. 생김새가 마치 개의 그것과 닮았다 하여 ‘개부알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 특이한 모양이 복을 담는 주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복주머니꽃’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선명한 색감과 독특한 곡선을 가진 이 꽃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고,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이질적인,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알고 보니 이 꽃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귀한 식물로, 함부로 채취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이 작은 꽃 한 송이조차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느껴졌습니다.
산장을 떠나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아쉬움과 여운이 뒤섞인 채 천천히 숲길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그리고 마음속에 담긴 작은 꽃 한 송이의 이미지까지… 깊은 산에서의 하루는 짧았지만, 자연이 건넨 조용한 위로와 감동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머물 것 같습니다.